정확한 정책 인지도 측정을 위한 질문 설계 방법론
서론: ‘안다’는 것의 여러 깊이, 정책 인지도 측정의 중요성
정부가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을 때, 국민들이 그 정책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더라도, 그 ‘앎’의 수준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정책의 이름만 어렴풋이 들어본 정도일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그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과 기대 효과, 심지어 재원 마련 방안까지 이해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좋은 정책 인지도 조사는 바로 이 ‘앎의 여러 깊이’를 구분하여 측정해내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러한 수준의 차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A 정책을 아십니까?”라고만 묻는다면, 우리는 피상적이고 왜곡된 데이터를 얻게 될 위험이 큽니다. 예를 들어, A 정책에 대한 지지도를 묻기 전에 인지도를 측정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 정책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지지도를 물어보기 위함입니다. 이때, 정책의 이름만 아는 사람의 지지도와, 정책의 내용까지 이해하는 사람의 지지도는 그 의미와 무게가 전혀 다릅니다. 따라서 정책 인지도를 어떻게 정교하게 측정하느냐는, 이후 모든 질문의 신뢰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첫 단추라 할 수 있습니다.
1. 국민의 머릿속 최우선 정책: ‘비보조 인지(Unaided Awareness)’ 측정법
인지도를 측정하는 가장 첫 번째이자 가장 강력한 방법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은 상태에서 응답자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입니다. 이를 ‘비보조 인지’,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응답된 것을 **‘최초 상기도(Top-of-Mind Awareness, TOMA)’**라고 부릅니다.
척도의 형태: 개방형 질문(Open-ended question)
측정의 목표: 특정 분야(예: 청년 정책, 부동산 정책)에서 국민들의 머릿속에 가장 강력하게 각인되어 있는 정책이 무엇인지 파악합니다. 응답자가 아무런 도움 없이 스스로 특정 정책을 떠올렸다는 것은, 그 정책의 홍보가 매우 효과적이었거나 사회적 의제로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질문 예시:
“귀하께서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청년 지원 정책’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정책의 이름을 하나만 말씀해주십시오. [________________]”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정책 중, 아시는 대로 모두 말씀해주십시오. [________________]”
이 방식은 응답자에게는 다소 어려운 과업일 수 있지만, 가장 순수하고 강력한 인지도를 측정할 수 있는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2. “혹시 들어보셨나요?”: ‘보조 인지(Aided Awareness)’ 측정법
비보조 인지를 통해 가장 강력한 정책을 확인했다면, 그 다음 단계는 연구자가 제시하는 목록을 보고 아는 것을 확인하게 하는 **‘보조 인지’**를 측정하는 것입니다.
척도의 형태: 폐쇄형 다중 응답 질문(Multiple-choice, select all that apply)
측정의 목표: 현재 시행 중이거나 논의되는 다양한 정책들에 대한 인지도의 ‘폭(breadth)’을 측정합니다. 비록 최초로 떠올리지는 못했더라도, 정책의 이름을 보고 “아, 들어본 적 있다”고 반응하는 것 역시 의미 있는 인지의 한 수준입니다.
질문 예시:
“다음은 현 정부가 추진하고 있거나 검토 중인 여러 청년 지원 정책 목록입니다. 이 중에서 이름을 들어보신 적이 있는 정책을 모두 선택해주십시오.”
[ ] 청년도약계좌[ ] 청년내일채움공제[ ] 청년월세 특별지원[ ] K-패스(대중교통비 환급)[ ] 청년 마음건강 바우처[ ] (가상의 함정 정책, 예: 청년희망드림펀드)[ ] 들어본 정책 없음
설계 시 핵심 원칙:
보기 순서의 무작위화(Randomization): 보기의 순서가 응답에 영향을 미치는 ‘순서 효과’를 방지하기 위해, 응답자마다 보기의 순서를 반드시 무작위로 다르게 제시해야 합니다.
함정 보기(Red Herring) 포함: 응답자가 질문을 제대로 읽지 않고 습관적으로 모두 체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목록에 실존하지 않는 가상의 정책 이름을 포함시켜 불성실 응답자를 가려낼 수 있습니다.
3. 인지를 넘어 이해로: ‘친숙도/이해도’ 척도 구성하기
정책의 이름을 들어본 것과, 그 정책의 내용을 **‘잘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보조 인지 단계에서 응답자가 ‘안다’고 답한 정책들에 대해, 그 앎의 ‘깊이’를 추가적으로 측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를 **‘친숙도(Familiarity)’ 또는 ‘이해도(Comprehension)’**라고 합니다.
척도의 형태: 서열 척도(Ordinal Scale) 또는 평가 척도(Rating Scale)
측정의 목표: 인지도의 질적 수준을 파악합니다. 단순히 이름을 아는 수준인지, 정책의 목적이나 내용까지 이해하고 있는지를 구분하여, 이후의 정책 지지도 질문에 답할 자격이 있는 응답자를 선별하는 역할을 합니다.
질문 및 척도 구성 예시:
“귀하께서는 ‘청년도약계좌’ 정책에 대해 전반적으로 얼마나 잘 알고 계십니까?”
① 이름만 들어본 정도다② 어떤 혜택이 있는지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③ 지원 대상이나 조건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잘 알고 있다④ 내용을 매우 잘 알고 있으며, 직접 신청했거나 신청을 고려 중이다
결론: 최적의 인지도 측정을 위한 ‘깔때기형’ 질문 설계
결론적으로, 정책 인지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최선의 전략은 이 세 가지 단계를 순서대로 적용하는 ‘깔때기형(Funnel Approach)’ 질문 설계입니다.
1단계 (가장 넓고 어려운 질문): 먼저 비보조 인지 질문을 통해, 국민들의 머릿속에 가장 강력하게 자리 잡은 최상위 정책이 무엇인지 확인합니다.
2단계 (조금 더 구체적인 질문): 이어서 보조 인지 질문을 통해, 정부가 추진하는 다른 여러 정책들에 대한 인지도의 폭을 측정합니다.
3단계 (가장 깊고 쉬운 질문): 마지막으로, 보조 인지 질문에서 ‘안다’고 답한 정책들에 대해서만, 친숙도/이해도 질문을 통해 그 앎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구체적으로 측정합니다.
이러한 깔때기형 접근법은, 응답자가 처음부터 모든 정보를 제공받아 답변이 오염되는 것을 방지하고, 인지의 여러 차원(깊이와 넓이)을 입체적으로 측정하여 데이터의 풍부함과 정확성을 극대화하는, 가장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방법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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