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은
어떻게 표본이 되는가
표집틀 없는 조사가 감당하는 비용에 관하여
여론조사에서 표본을 뽑으려면 먼저 표집틀이 있어야 한다. 모집단에 속한 대상들의 목록, 그로부터 확률적으로 사람을 골라낼
수 있는 명부다. 일반 국민 조사에서는 이 문제가 오래전에 풀렸다. 통신사
가상번호 체계가 있어 조사기관은 성·연령·지역 기준으로 표본을
배정받아 접촉한다. 표집틀을 조사기관이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
이것이 국민 조사의 비용 구조를 지탱하는 토대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하면 이 토대가 통째로 사라진다.
공무원이라는 모집단을 확률표본으로 뽑을 수 있는 표준 명부가 조사자에게 없다. 그 부재가
만들어내는 비효율은 조사 한 건의 불편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 글은 그 비효율이 어디서 생기고 어떻게
누적되는지를 따라가 본다.
모집단은 완벽하다, 다만 닿을
수 없다
공무원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관리되는 모집단 중 하나다. 국가공무원은 e-사람에, 지방공무원은
인사랑에 전수로 등록돼 있다. 인사랑은 243개 지자체에
흩어져 있던 인사 DB를 17개 시·도 중심으로 통합해 클라우드로 올렸고, 지방공무원과 공무직까지 포괄한다. 이름, 소속, 직급, 직렬이 빠짐없이 들어 있는 완전한 명부가 이미 존재한다.
조사자에게 이보다 이상적인 표집틀은 없다. 층화도
자유롭고 가중치 설계도 정확해진다. 그러나 이 명부는 인사행정 목적의 개인정보이고, 표집틀로는 결코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완벽한 목록이 눈앞에 있는데
조사에는 한 줄도 쓸 수 없다. 공무원 조사 비효율의 뿌리가 여기다.
문제는 명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명부에 닿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마다 전화번호부를 만든다
접근 가능한 명부가 없으니 조사자들은 각자 표집틀을 자작한다. 방법은 대개 하나로 수렴한다. 기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조직도와 부서
전화번호를 긁는 것이다. 부처 하나를 열면 실 아래 국이 있고 국 아래 과가 있고, 과마다 직통번호와 담당 업무가 붙어 있다. 이것을 기관별로 반복해
표를 채운다. 조사 대상이 중앙부처 전체라면 수백 개 홈페이지가 대상이 된다.
비효율의 첫 번째 층은 중복이다. 이 작업을
조사기관마다 따로 한다. A 기관이 만든 공무원 전화번호부와 B 기관이
만든 것은 같은 원천을 긁은 거의 동일한 산출물인데, 서로 공유되지 않는다. 사회 전체로 보면 동일한 노동이 조사기관 수만큼 반복된다. 표집틀이라는
것이 본래 공공재의 성격을 가지는데, 공무원 조사에서는 그것이 사유재처럼 각자 생산되고 각자 폐기된다.
두 번째 층은 갱신이다. 긁어 만든 표는
만든 순간부터 낡기 시작한다. 인사이동이 상시로 일어나고, 조직개편이
주기적으로 판을 뒤집는다. 부처가 나뉘고 합쳐지며 실·국의
이름이 바뀌면, 작년에 만든 표는 상당 부분 폐기하고 다시 긁어야 한다. 한 번의 수고로 끝나지 않고 조사 때마다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 이것이
조사자들이 흔히 무한 루프라 부르는 상태다.
공개돼 있으나 데이터가 아니다
더 답답한 것은 통합본이 실재한다는 사실이다. 공무원들은
서로의 연락처를 정부 전자전화번호부로 조회한다. 부처를 가로지르는 통합 전화번호부가 정부 안에 이미
있고, 국가 도메인에 주소까지 걸려 있다. 다만 행정망 안이나
공무원 인증을 거쳐야 열린다. 담장 밖의 조사자에게는 없는 것과 같다.
존재하는데 닿을 수 없다는 앞의 사정이 여기서 되풀이된다.
밖에서 접근되는 자료들은 저마다 결함이 있다. 정부24의 부서 연락처는 실·국·과
계층과 직통번호를 갖춰 표집틀의 골격에 가장 근접하지만, 중앙행정기관과 광역자치단체까지만 담고 기초자치단체 229곳이 빠진다. 정부간 관계를 다루는 조사는 중앙과 광역과 기초를
함께 봐야 하는데 프레임이 중간에서 끊긴다. 공공데이터포털의 일선기관 연락처는 기관 대표번호 수준이라
부서 단위로는 못 쓴다. 데이터셋마다 붙은 관리부서 연락처를 모으면 기초 부서도 잡히지만, 데이터 등록 업무를 하는 부서로 편중된 부분 명부다.
그러니 조사자는 여러 불완전한 소스를 손으로 이어 붙인다. 정부24로 중앙과 광역을 채우고,
기초는 각 지자체 홈페이지를 하나씩 긁어 메우고, 서로 다른 자료의 형식을 통일한다. 정보는 분명 공개돼 있다. 다만 조사에 쓸 하나의 데이터로는 어디에도
없다. 공개와 활용 사이의 이 간극이 비효율의 세 번째 층이다.
비효율의 값은 누가 치르는가
이 모든 수고는 결국 조사의 값으로 전가된다. 표집틀
구축에 드는 시간과 인건비가 조사 단가에 얹히고, 그 부담은 대개 학술 연구나 공공 목적 조사가 진다. 표집틀 자작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곳은 아예 확률표본을 포기하고 편의표본으로 물러선다. 접근 가능한 몇몇 기관, 아는 담당자를 통해 표본을 채우는 방식이다. 그 순간 조사의 대표성은 무너지고, 공무원 집단에 대한 우리의 통계적
지식은 그만큼 부실해진다. 표집틀의 부재는 조사자의 불편에서 끝나지 않고 조사 결과의 질로, 나아가 그 결과에 기대는 정책 판단으로 흘러간다.
통계 당국도 이 문제를 몰랐던 것은 아니다. 조사구
방식의 표집틀을 만들려다 접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유는 짐작이 간다. 조사구는 주거지를 기반으로 하는 틀이라 상주인구에는 통하지만, 공무원은
직장 단위로만 접근되는 모집단이다. 기관 협조 없이는 개인 단위 명부를 세울 수 없고, 세운다 해도 인사이동과 조직개편의 속도가 갱신 비용을 감당 못 하게 만든다.
국가의 자원으로도 쉽지 않은 일을 개별 조사기관이 매번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루프를 끊는 데 드는 것은 크지 않다
구조를 뜯어보면 이 비효율은 필연이 아니다. 완벽한
전수 명부는 인사시스템 안에 있으나 개인정보라 나오지 않고, 통합 전화번호부는 정부 안에 있으나 담장을
넘지 못한다. 막혀 있는 것은 데이터의 존재가 아니라 접근이다. 그리고
접근을 여는 데 드는 비용은, 지금 사회 전체가 반복해서 치르는 중복 비용에 비하면 크지 않다.
부서 단위의 통합 전화번호부를 분기마다 공공데이터포털에 올리는 것만으로 표집틀 문제의
절반은 해소된다. 이미 각 기관이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있는 정보이니 새로 만들 것도 없고, 비공개로 막을 명분도 약하다. 더 나아가면 e-사람과 인사랑에 이미 모바일 접점까지 깔려 있으므로, 전수 프레임에서
층화 표본을 뽑아 조사 안내를 보내는 일도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국민 조사가 가상번호 체계로 표집틀
문제를 공적으로 해결했듯, 공무원 조사에도 같은 발상이 필요할 뿐이다.
그 전까지 조사자는 홈페이지를 긁고, 표를
깁고, 낡으면 다시 긁는다. 이 반복이 당연한 일로 굳어지면
그 비용은 보이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비용은 줄여야 할 대상으로 인식되지도 않는다. 공무원 조사의 표집틀 이야기를 굳이 기록으로 남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한
루프를 끊는 값이 생각보다 작다는 것을, 루프 안에 있는 사람은 오히려 잊기 쉽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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