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이 좋아지면 신세틱 서베이도 좋아질까: 정량과 정성은 다른 게임이다
AGI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
요즘 신세틱 서베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반드시 나오는 질문이 있다. LLM이 계속 발전해서 AGI에 가까워지면, 신세틱 서베이의 정합성도 따라서 좋아지느냐는 것이다. 모델이 사람처럼
생각하게 되면 사람의 응답도 잘 흉내 내지 않겠느냐는 직관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나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라고 본다. 그리고 그 절반이 어느 쪽 절반이냐가
정량조사와 정성조사에서 갈린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량은 모델 지능이 아무리 올라가도 풀리지 않는 문제를
안고 있고, 정성은 모델 발전의 수혜를 직접 받되 그 수혜가 미치지 않는 한계가 하나 남는다. 이 글은 그 구분을 정리해보려는 시도다.
정량은 분포의 게임이다
정량조사의 산출물은 분포다. 어떤 정책에
찬성이 47퍼센트냐 53퍼센트냐, 지지율이 오차범위 안이냐 밖이냐를 맞히는 게임이다. 신세틱 정량
서베이의 정합성이란 결국 가상 응답자 집단이 만들어낸 분포가 실제 조사의 분포에 얼마나 근접하느냐의 문제다.
여기서 오차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첫
번째 출처는 학습 데이터의 분포 편향이다. LLM은 인터넷에 축적된 텍스트로 학습된다. 그런데 온라인에 글을 남기는 사람과 조사의 모집단은 다른 집단이다. 글을
많이 쓰는 사람일수록 젊고, 교육 수준이 높고, 의견이 강하다. 70대 농촌 거주자의 정책 태도는 온라인 텍스트에 그 사람의 인구 비중만큼 기록되어 있지 않다. 이 편향은 모델이 똑똑해진다고 해소되지 않는다. AGI가 되어도
학습 데이터에 충분히 기록되지 않은 집단의 의견 분포는 알 수 없다. 더 그럴듯하게 추정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럴듯한 추정과 맞는 추정은 다른 것이다. 조사
방법론에서 표집틀에 없는 사람은 아무리 정교한 가중치로도 완전히 복원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이치다. 커버리지
오차는 통계 처리의 문제가 아니라 자료의 문제다.
두 번째 출처가 더 흥미로운데, 모델이
너무 똑똑해지면 도리어 악화될 수 있는 부분이다. 실제 응답자는 비일관적이다. 문항을 대충 읽고, 잘 모르는 주제에도 답하고, 어제와 오늘 답이 다르다. 컨버스가 제기한 무태도 응답, 크로스닉이 정리한 만족화 응답 개념이 가리키는 그대로다. 여론조사
원자료의 상당 부분은 숙고의 산물이 아니라 문항당 5초에서 10초
사이에 이루어지는 즉답으로 채워져 있다. 나는 인간의 설문 응답이 투랑조의 4단계 인지 모델이 그리는 것만큼 합리적이고 순차적인 과정이라고 보지 않는다.
이해하고, 인출하고, 판단하고, 응답을 맞춘다는 네 단계를 다 거치기에 5초는 너무 짧다.
그런데 지능이 높은 모델일수록 논리적으로 정합적인 답을 내놓으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앞 문항의 답과 뒤 문항의 답이 모순되지 않도록 조율하고, 잘 모르는
주제에는 유보하고, 극단을 피한다. 사람의 무지와 비합리와
모순까지 재현해야 분포가 맞아떨어지는데, 모델 발전의 방향은 정반대를 향한다. 여기에 정렬 학습의 효과가 겹친다. 상용 LLM은 무난하고 온건한 답변을 내놓도록 훈련된다. 그 결과 강한
의견을 가진 응답자층이 체계적으로 과소 재현된다. 무당층과 유보층과 모름 응답의 비율을 맞히는 일, 그러니까 태도가 없는 사람의 비율을 맞히는 일은 신세틱 정량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 중 하나인데, 이것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 방식의 문제다.
그래서 정량 신세틱의 정합성을 끌어올리는 열쇠는 모델의 범용 지능이 아니라 실측 데이터로
하는 보정에 있다고 본다. 같은 문항을 실제 조사와 신세틱 조사에 동시에 태워보고, 어느 집단에서 어느 주제일 때 얼마나 어긋나는지 오차 구조를 축적하는 것이다.
성별로, 연령으로, 이념 성향으로, 문항 유형으로 오차의 패턴이 쌓이면 그것 자체가 보정 모형의 재료가 된다. 이
게임에서 유리한 쪽은 더 좋은 모델을 쓰는 쪽이 아니라 실사 데이터를 계속 만들어내는 쪽이다. 조사회사가
신세틱 서베이 시대에도 무기를 쥐고 있다면 바로 이 실측 자산이다. 모델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은
정량에서는 이길 수 없는 전략이다.
정성은 재현의 게임이다
정성조사는 계산이 다르다. 정성조사에서
클라이언트가 사는 것은 분포가 아니다. 이유와 언어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을 어떤 표현으로 말하는지, 찬성한다면서도
어떤 조건을 다는지, 어떤 생활 경험이 그 태도의 근거로 동원되는지다.
백분율이 아니라 구술이 산출물이다.
이것은 분포 추정의 문제가 아니라 그럴듯한 인간 재현의 문제다. 그리고 인간 재현은 모델 지능이 올라가면 직접적으로 좋아지는 영역이다. 지금
모델들도 조건을 주면 해당 집단의 전형을 연기하는 수준은 된다. 50대 자영업자, 대구 거주, 고졸이라는 속성을 주면 그 집단이 할 법한 말을 만들어낸다. 더 발전한 모델은 여기서 나아가 그 사람이 처한 경제 사정과 세대 경험과 지역 정서가 특정 정책 앞에서 어떻게
충돌하는지까지 추론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자영업자의 태도가 노동자였던 과거 경험과 고용주인
현재 처지 사이에서 흔들리는 것 같은 내적 긴장 말이다. 모더레이터가 예정에 없던 추가 질문을 던졌을
때 일관된 세계관으로 반응하는 능력, 문항 워딩의 미묘한 차이에 사람처럼 다르게 반응하는 능력도 계속
나아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신세틱 IDI와 신세틱 FGD가 신세틱 정량보다 먼저 실무에 자리 잡을 것이라고 본다. 실제로
지금 수준의 모델로도 쓸모가 있는 용도들이 있다. 본조사 전에 가설을 발굴하는 용도, 설문 문항을 사전 테스트하는 용도, 인터뷰 가이드를 리허설하는 용도다. 실제 좌담회를 열기 전에 가상 참석자들에게 가이드를 한 바퀴 돌려보면 어떤 질문이 헛돌고 어떤 질문에서 이야기가
터지는지 미리 볼 수 있다. 이 정도만 해도 실사 한 회차의 실패 비용을 생각하면 값어치를 한다.
그러나 발견은 못 한다
다만 정성에도 모델 발전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한계가 하나 있다. 정성조사의 진짜 가치는 조사자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튀어나올 때 생긴다. 설계
단계에서는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불만, 소비자들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은어, 제품을 엉뚱한 용도로 쓰는 관행 같은 것들이다. 발주처가 정성조사에
기대하는 것도 결국 이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게 있었다는 문장을 보고서에서 만나는 일 말이다.
그런데 모델은 학습 데이터 안에서 그럴듯한 것을 재조합한다. 세상에 새로 등장한 불만, 학습 시점 이후에 형성된 정서, 아직 텍스트로 기록된 적 없는 관행은 만들어낼 수 없다. 만들어낸다면
그것은 발견이 아니라 창작이고, 조사 산출물로서는 오염이다. 그러니까
신세틱 정성은 사람들이 대체로 이렇게 말할 것이라는 예행연습으로는 강력하지만, 우리가 몰랐던 것을 찾아내는
도구는 되기 어렵다. 재현과 발견 사이에 선이 있고, 신세틱은
그 선의 재현 쪽에 서 있다.
마케팅 정성과 공공 정성은 원하는 것이 다르다
여기까지 오면 정성조사를 하나로 묶어서 말하기 어렵다는 것이 드러난다. 발견의 한계가 치명적인 시장이 있고, 별문제가 되지 않는 시장이
있기 때문이다.
마케팅 정성조사는 발주 동기 자체가 불확실성 해소다.
우리가 모르는 미충족 니즈, 예상 못한 사용 장면, 아직
언어화되지 않은 불만을 찾으려고 돈을 쓴다. 신제품 컨셉 테스트든 사용성 조사든,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것은 자기들이 이미 아는 이야기의 확인이 아니라 모르던 이야기의 출현이다. 신세틱이 구조적으로 가장 약한 자리에 수요의 무게중심이 놓여 있는 셈이다. 마케팅
정성에서 신세틱은 실사 전 리허설 이상의 자리를 차지하기 어렵다고 보는 이유다.
공공과 사회조사 영역의 정성은 사정이 다르다. 솔직하게
말하면, 공공 정성조사는 결론의 방향이 대강 정해진 상태에서 발주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정책은 이미 설계되어 있고, 필요한 것은 보고서에 들어갈 주민의
목소리다. 수용성 논거를 받쳐줄 인용문, 집단별 반응의 예시, 이해관계자 유형별 우려 사항의 정리 같은 것들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발견이 아니라 재현이다. 40대 자영업자는 이런 식으로 말한다,
고령층은 이 부분을 걱정한다는 수준의 그럴듯함이면 산출물로 기능한다. 그리고 그것은 신세틱이
이미 잘하고 앞으로 더 잘할 일이다.
실사 여건도 이 방향을 거든다. 공공 정성조사는
대상자 리크루팅이 어렵다. 특정 정책의 이해관계자를 조건에 맞게 모으는 일은 소비자 패널에서 뽑는 일보다
훨씬 품이 들고, 사례비 대비 참여 동기도 약하다. 실사의
고충이 큰 영역일수록 대체재의 유인은 커진다. 신세틱 정성의 시장이 열린다면 마케팅보다 공공 쪽이 먼저라고
보는 근거다.
절차라는 변수
다만 공공 영역에는 다른 종류의 장벽이 하나 있다.
공공 정성조사의 가치에는 내용만이 아니라 절차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주민 의견을 실제로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정책의 정당성 근거가 되는 구조다. 공청회가 요식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들었다는 절차가 남아야 한다.
그래서 산출물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실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발주처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 감사 대응이나 민원 상황에서 AI가 만든 주민
의견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순간, 조사의 품질과 무관하게 사업 전체가 흔들린다. 이것은 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라 행정의 문제이고, 모델이 발전한다고
풀리는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면 공공 영역에서 신세틱 정성이 자리 잡는 경로는 본조사 대체가 아니다. 조사 설계 전의 사전 탐색, 인터뷰 가이드의 검증, 실사 결과의 보강 같은 이름을 달고 들어가야 한다. 실사 IDI 몇 건을 앵커로 두고 신세틱으로 유형과 폭을 넓히는 하이브리드 구성이라면, 실제로 들었다는 절차 요건과 납품 물량을 동시에 채울 수 있다. 실측
표본이 신세틱 결과의 검증 장치 역할을 겸하니 방법론적으로도 변명이 선다. 정량에서 실측 보정 표본을
붙이는 논리가 정성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기다리는 쪽과 축적하는 쪽
정리하면 이렇다. 정량 신세틱의 정합성은
모델 지능의 함수가 아니라 보정 데이터의 함수다. 학습 데이터의 편향은 지능으로 풀리지 않고, 무태도와 만족화의 재현은 모델 발전 방향과 어긋난다. 이 게임의
승부처는 실측 조사와 신세틱 조사를 나란히 돌리며 오차 구조를 쌓는 데 있다. 정성 신세틱은 모델 발전의
수혜를 직접 받는다. 다만 발견이 아니라 재현의 도구라는 성격은 바뀌지 않으며, 그 성격 때문에 발견을 사려는 마케팅 정성보다 그럴듯한 구술을 사려는 공공 정성에서 먼저 쓸모를 인정받을 것이다. 공공에서는 절차적 정당성이라는 관문이 남지만, 실사 앵커를 둔 하이브리드
구성으로 우회할 길이 있다.
모델이 좋아지면 신세틱 서베이도 좋아지느냐는 질문으로 돌아가면, 답은 이렇게 된다. 좋아지는 부분이 있고, 좋아지지 않는 부분이 있고, 나빠질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그 셋을 구분하지 않고 모델 발전을 기다리는 쪽과, 구분한 다음
자기 실측 자산으로 오차를 축적하는 쪽이 있다면, 몇 년 뒤 신세틱 서베이를 상품으로 팔 수 있는 쪽은
후자다. 신세틱 서베이의 미래는 모델 성능표가 아니라 조사 설계자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