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대상 설문조사: 방법론과 윤리적 고려사항
서론: ‘평균’의 함정을 넘어, 모든 목소리를 담기 위하여
모든 조사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하지만 많은 조사가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정을 바탕으로 설계되면서,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인 장애인의 목소리를 종종 배제하거나 왜곡하곤 합니다. ‘장애인’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며, 그들의 경험과 인식, 욕구는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거울입니다.
따라서 장애인 대상 서베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행위를 넘어, 사회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정책과 서비스를 개선하기 위한 ‘소통의 창구’를 여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조사 설계의 가장 첫 단계부터 마지막 분석 단계까지, ‘장애 감수성’과 ‘인권 존중’의 관점을 놓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1. 설계의 첫 단추: ‘우리에 대한 것은, 우리 없이는 없다(Nothing About Us, Without Us)’
좋은 조사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특히 장애인 대상 조사에서는, 연구자가 자신의 관점에서만 질문을 설계하는 오류를 피하기 위해, 조사의 주인공인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 전문가를 기획 초기 단계부터 반드시 참여시켜야 합니다.
자문단 구성: 다양한 장애 유형을 대표하는 사람들, 장애인 인권 단체 활동가, 관련 분야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자문단을 꾸려, 조사 기획의 전 과정에 대한 의견을 구해야 합니다.
질문지 공동 개발: 설문지의 질문과 보기, 사용되는 용어 하나하나를 자문단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연구자에게는 중립적으로 보이는 단어가 당사자에게는 차별적이거나 상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애를 극복하고…’와 같은 표현은 비장애인 중심의 시혜적 시각을 담고 있을 수 있습니다.
‘당연한’ 가정 버리기: 설문지는 응답자가 특정 활동(예: 운전, 독서, 스마트폰 사용)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난 일주일간 몇 번이나 운전하셨습니까?”와 같은 질문은 일부 응답자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거나, 소외감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2. 문을 여는 기술: 접근성을 보장하는 조사 방법(Mode)의 선택
어떤 조사 방법을 선택하느냐는, 장애인 응답자의 참여 가능성을 결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단일한 조사 방식은 특정 유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수 있으므로,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는 ‘혼합모드(Mixed-Mode)’ 설계가 필수적입니다.
웹조사:
장점: 시각장애인을 위한 스크린리더, 지체장애인을 위한 키보드 조작 등 보조 기술과의 호환성이 확보된다면 매우 효과적입니다.
주의점: 반드시 **웹 콘텐츠 접근성 지침(WCAG)**을 준수해야 합니다. 충분한 색상 대비, 명확한 레이아웃, 모든 기능의 키보드 접근성, 이미지에 대한 대체 텍스트 제공 등이 필수입니다.
전화조사:
장점: 시각장애인이나 이동이 불편한 응답자에게 매우 효과적인 방식입니다.
주의점: 청각장애인을 위해 문자 통신 중계 서비스나 보이는 ARS 등 대안적 소통 채널을 마련해야 합니다. 면접원은 반드시 천천히, 그리고 명확한 발음으로 질문해야 합니다.
대면면접조사:
장점: 복잡한 질문을 설명하고, 라포를 형성하며, 응답자의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조사를 진행할 수 있어 가장 포용적인 방식이 될 수 있습니다.
주의점: 조사 장소는 반드시 휠체어 접근성이 보장되어야 하며, 면접원은 사전에 장애 유형별 에티켓에 대한 충분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최선의 전략: 결국, **응답자에게 가장 편안하고 적합한 조사 방식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는 ‘응답자 주도형 혼합모드’**가 가장 바람직합니다.
3. 사람과 사람 사이: 조사원의 전문성과 윤리적 태도
면접원이 개입되는 조사에서, 조사원의 태도와 전문성은 조사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장애 인권 및 에티켓 교육: 모든 조사원은 조사에 투입되기 전, 장애 인권 감수성 교육과 장애 유형별 에티켓 교육을 반드시 이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 응답자에게는 자신을 먼저 소개하고, 청각장애인 응답자와는 시선을 맞추며 입 모양을 명확히 하고, 지적장애인 응답자에게는 쉬운 단어로 천천히 설명하는 등의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당사자 중심의 소통: 동반 활동지원사나 가족이 함께 있더라도, 반드시 장애인 당사자에게 직접 질문하고 그 답변을 존중해야 합니다. 동반인에게 대신 질문하는 것은 응답자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매우 무례한 행위입니다.
인내심과 유연성: 응답 과정은 일반 조사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조사원은 이를 충분히 인지하고, 응답자를 재촉하지 않으며, 필요에 따라 쉬는 시간을 제공하는 등 유연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4. 단순한 조사를 넘어, 존중과 동행의 약속
결론적으로, 장애인 대상 서베이는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하는 기술적인 과업을 넘어, **우리 사회가 소수자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의 삶을 존중하려는 ‘윤리적 약속’이자 ‘정치적 실천’**입니다.
이를 위해 연구자는 다음과 같은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효율성보다 포용성: 조사 진행이 조금 더 복잡하고 비용이 더 들더라도, 한 명의 목소리라도 더 담아내려는 포용성의 원칙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합니다.
데이터 추출이 아닌, 소통과 경청: 응답자를 단순히 정보의 원천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과 경험에 대한 전문가로서 존중하고,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결과의 사회적 환원: 조사 결과가 단순히 보고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정책과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져 응답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사회적 책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결국, 가장 성공적인 장애인 대상 서베이는 가장 높은 응답률이나 가장 정교한 통계 분석을 자랑하는 조사가 아닙니다. 조사에 참여한 모든 응답자가 **“나의 이야기가 온전히 존중받았다”**고 느끼게 만드는 조사, 바로 그것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조사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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